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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의 현장/책

성찰 없는 운동의 결말, 『지구에서 한아뿐』

스티커는 다음 리뷰부터 깔끔허게 붙여오겠습니다.

기차를 오래 탈 일이 있어 미뤄왔던 책을 읽었다. 정세랑 작가는 옥상에서 만나요,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작품으로 이름만 아는 작가였다. 둘 다 읽지도, 영상으로 보지도 않았지만 요즘 인기가 많길래 주변에서 한 권을 추천 받아 읽었다. 이 책을 추천해준 친구에게 이 리뷰를 바친다.

 

한 문단에 주인공의 속성이 모두 들어가있다.

나는 나쁜 버릇이 하나 있는데, 어떤 전형성을 띈 인물을 내세우면 '비꼬는건가?' 생각하면서 글을 읽기 시작하는 버릇이다. 도입부에 이미 특정 집단의 전형성을 늘어놓기에 나는 이 책의 중후반부까지 풍자하는 글인 줄 알았다.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쓴 글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하여간, 주인공은 서교동-홍대/합정 부근-에서 친구와 리사이클링 샵을 운영하는 여성이다. 환경에 대한 고민, 타종족과 살아가는 법, 폭력에 대한 민감성과 홍대에서 망하지 않고 사업을 이어갈 센스까지 갖추었다. 공존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꿈꾼다. 집단을 만들어 환경운동에 열을 올리진 않지만 개인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실천하려고 하는 바른 가치관을 지닌 캐릭터, 일단은 그렇게 정의하자.

 

언제나 한아는 '사람'을 원망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종족과 공존가능한 삶을 꿈꾸며 실제로 행동에도 옮기는 한아의 원망과 분노는 언제나 사람을 향한다. 78억이 되어버린 인구와 지구 생태계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환경문제는 과거의 업보인 동시의 우리의 과제이며 우리는 살기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꿈꾸어야한다. 하지만 그 공존은 실체조차 불분명한 개인을 원망하고 비꼬는 것으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개인의 만족은 될 수 있다. 시기를 잘 타면 주변에 보이는 부조리까지는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개인의 악은 온전히 그 개인의 선택이고 그 개인이 타고난 악성일 수 없기 때문이다.

 

환경을 위한 개인의 실천, 그러나 한아의 실천은 그곳에서 멈췄다.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인간이든 악성을 띌 수 밖에 없다. 내가 탄소 배출량이 적고 음식물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음식을 스몰웨딩의 음식으로 만들고, 비닐과 플라스틱을 일상에서 최대한 배제하려고 하고, 쌀뜨물과 친환경 세제로 설거지한다고 해도, 세계의 범위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탄소를 배출하고, 음식을 쉽게 남기며, 비닐과 플라스틱은 너무 구하기 쉬우며, 당장 식당 설거지 알바만 해봐도 몇시간 후에는 고무장갑이 뚫리는 독한 세제를 싸다는 이유로 쓴다. 그리고 '싸다는 이유'는 그것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악행이 온전히 그의 책임일 수 없는 까닭이다.

 

한아의 삶은 분명 치열한 투쟁의 장이고, 한시라도 긴장을 풀면 안되는 끝없는 윤리적 딜레마와의 싸움이다. 그런데 거기서 멈췄다. 한아는 자신의 실천에 취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은근한 화법으로 공격한다.

 

인간보다 생산되는 제품이 많은 것 같은 이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고래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고래의 친절한 이웃이 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안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의 단위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들이 모여서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돌고래는 연안에 큰 배들이 다니는 이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해안으로 올라올 것이다. 근본적으로 고래들에게 바다를 돌려주는 방법, 한아도 그 방법은 모른다. 바다로 통하는 운수를 한아 혼자서 막을 수 있는가? 바닷길이 막히면 대체할 수 있는 길을 한아 혼자서 제시할 수 있는가? 결국 한아 역시 돌고래를 해안에서 구했을 뿐, 고래에게 근본적으로 친절한 이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본인이 친절한 이웃이 되고 싶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는거지.

 

비행기를 타고 싶진 않지만 신혼여행은 베네치아와 몰디브 중에 고민한다.

 

 

이 결혼한 남자친구는, 사실 원래 남자친구가 아니다. 11년이나 사귀었는데 여전히 서로를 이해못하고 (같은 종인 지 남친도 이해 못하면서 고래를 어떻게 이해하려고 하는거야) 남자가 굉장히 심란하게 굴고, 자기중심적이고,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해 무통보로 여행을 훅갔는데, 그곳에서 우주여행을 떠나버린다. 그래서 지금 남친의 모습을 하고 있는건 남친을 우주여행 보내버린 외계인이다. 

 

근데 얘가 완전 환상종이다. 상냥하고, 심지어 밤일도 속궁합 오지게 잘 맞춰주고, 한아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지지해주고... 유니콘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외계인은 자기 종족끼리는 생각을 공유하는데, 이 개체가 망원경으로 한아를 보고 사랑에 빠져서 이 별의 종족 모두 한아를 사랑해버린 것이다. 와, 다른 별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니, Fate/Grand Order 실장하면 '특별한 별' 속성 달고 나올듯;

 

 

실제로는 이것 이상으로 걸릴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결혼을... 한 사람은 다 욕하고 다녀온 사람까지 욕한다는 스몰-셀프 웨딩으로 하고 온갖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생각해 설거지까지 쌀뜨물로 하고,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몰디브(?????)로 간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섬나라 몰디브를 신혼여행지를 고민한다. 고래에 대해서는 타인을 수동공격하다니, 자신이 비행기를 몇 시간씩 타서 해외 여행을 가는 건 괜찮단 말인가? 내로남불을 떠나서 자기들 결혼 음식에까지 탄소배출량을 생각한 인간이 신혼여행은 비행기 타고 가는 게 말이 되는 생각인가? 유럽도 12시간은 걸리는데 몰디브가 3시간 걸리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둘다 비행시간이 12시간이라는게 너무 기절할 발상인 것이다.

 

지구에서 끝까지 살았으나, 한아는 결국 지구를 떠난다.

 

환경운동일까? 어쨌거나 한아는 비건을 실천하려고 하고, 패스트패션보다는 옷을 고쳐 입는 사업을 하고, 다른 종족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삶을 꿈는다. 그것은 분명 개인적인 차원이지만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최소한 본인만큼의 쓰레기는 줄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평생을 투신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을 도입부에 보여줬으면 최소한 결말은 그 삶의 결과를 보여주어야하는 것 아닌가. 완벽한 그 사람과 함께 지구를 떠난다니. 

 

생각해보면 이게 진짜 그 결과일수도 있겠다. 개인의 실천으로는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니, 결국 새로운 존재가 되어 지구를 떠나야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엔딩.

 

 

한줄 요약 : 지 남친도 11년동안 스스로 분리수거 못한 인간이 무슨 쓰레기를 재활용하겠다는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