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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의 현장/게임

[PC/STEAM] 용과 같이 7 - 과거를 짊어지는 자, 과거를 버리는 자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다가 인생에서 90시간이 지워졌다

 

나, '용과 같이' 시리즈를 전혀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키류 카즈마, 마지마 고로 같은 용과 같이의 대표 캐릭터를 전혀 모르고 '용과 같이 7'을 시작해버렸다.

이 게임에 대해 얼마나 몰랐냐면 나는 7편이 새로운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지도 모르고 산거다...(;;;)

어쩌다가 사게되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나는 스포 당하는 게 싫어서 게임이나 소설류는 리뷰 검색하지도 않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용과 같이 7은 나같은 뉴비초짜들을 위한 게임이었다. 이전 시리즈를 알면 아는 대로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이 시리즈의 역사와 캐릭터와 동성회의 오야붕이 누군지도 모르고 냅다 시작했는데도 스토리는 굉장히 만족하게 즐겼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를 구상한 것 같다.

 

이전까지는 액션 게임이었다는데? 7편은 턴제라서 전투도 편하다.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 하여간 나처럼 게임 못하는 사람도 할만하다. 요즘에는 새로 나온 용과 같이 8 외전 하고 있는데, 이것처럼 액션이었으면 아마 스토리 끝까지 못 봤을 것이다....

 

! 이 밑으로는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

 

새로운 주인공, 카스가 이치반. 오야붕을 존경해서 야쿠자가 되었다.

 

새로운 주인공인(나한테는 첫 주인공인) 카스가 이치반은 열혈, 다정, 의리 똘똘 뭉친 인간이다. 윤락가에서 태어나서 점장의 성을 이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캐릭터.  처음부터 이렇게 야쿠자주제에 올바르던 놈은 아니었던 것 같고, 방황하던 시기에 아라카와조 이름을 대면서 야쿠자를 패고 다니다가 진짜 손가락 잘리게 생겼는데, 아라카와 마스미가 직접 나타나 자기 손가락을 쿨하게 자르고 구해준다. 그 의리에 갱생해서 아라카와조의 야쿠자가 된, 간죽간살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열혈 야쿠자가 되었다.

 

아라카와 마스미가 보여준 모습을 동경하며 야쿠자가 된 카스가 이치반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것, 말하자면 믿기로 한 상대는 끝까지 믿는 인물이다. 

 

카스가의 영원한 오야붕이자 연극의 극에 도달한 아라카와 마스미

 

시원시원하고 감추는 게 없는 카스가와는 다르게, 그의 오야붕인 아라카와 마스미는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냥 게임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저 표정으로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통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을 뿐더러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는데, 어째서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시점이 게임 후반부여서, 더. 

 

 

도련님과 아라카와조 2인자 사와시로 죠. 둘 다 사람을 긁는(심리/물리)의 재능이 엄청나다

 

아라카와조는 동성회 안에서도 살인? 전문이었나? 하여간 굉장히 살벌한 조직인데 초반에 보여주는 모습은 떼인 돈 받으려고 개같이 달리기, 그것도 못 받아서 2인자한테 개같이 쪼이기, 다리가 불편한 도련님 모시고 비싼 살롱에 찾아가기 등등 심각한 일상은 딱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2인자를 잔소리 많은 중간관리직 정도로 보거나 도련님을 진짜 까칠하고 음침한 인간으로만 본다면 후반부에 뒤지게 쏘일 것이다...

 

 

삶과 맞교환한 은혜이기에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역시 자신의 삶을 바쳐야한다

 

어쨌거나 카스가 이치반은 아라카와 마스미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생각하므로, 그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 얼마나 충성심이 높냐면 마스미가 '너, 살인죄를 대신 쓰고 감옥에 좀 다녀와야겠다' 고 하니까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저렇게 말하고 감옥 다녀온다.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인간성으로 옥살이 잘하고 있었는데, 아라카와 어르신을 욕하는 무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원래 살아야하는 형기+알파 되어서 거의 20년 살다 나왔나? 

 

감옥 에피소드에서 '카스가 이치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들을 발굴할 수 있는데, 카스가 이치반은 선하게 그려지지만-폭력을 휘두르는데 거리낌이 없으며-야쿠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태양 같은 야쿠자'인데, 나는 이 캐릭터가 지니는 모순점을 스토리 안에서 굉장히 잘 살렸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 게임을 정말 즐겁게 플레이했다.

 

 

 

대충 20년-30년 정도 흘러서 사회에 나오니까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일단... 스마트폰이라는 게 생겼고... 야쿠자의 시대는 뭔 소탕작전으로 한물 갔고, 오미 연합과 더불어 일본 최대 조직이었던 동성회도 해체되어 오미 연합에 흡수되었다. 그 사이 아라카와 마스미는 오미 연합의 서열 2위?의 대리인?이 되어버려서 많은 조직원들을 몰고 다닌다. 하지만 그런 거에 쫄았으면 카스가 이치반이겠는가.. 그는 저벅저벅 어르신에게 "제가 돌아왔습니다!" 하며 회포를 풀고 싶어하지만, 어르신은 그런 거 없다.

 

심지어 아라카와의 아들이었던 아라카와 마사토는 '아오키 료' 라는 젊은 정치인이 되어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는 음침한 마사토가 더 섹시했다고 생각해요

 

 

부탁의 極

 

 

겨우 북경오리 전문점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아라카와는 냅다 카스가를 향해 총을 빵~!!!!!! 카스가는 정신차려보니 피투성이 만엔짜리 지폐만 남긴 채, 요코하마의 어느 쓰레기장에서 발견된다. 난바 유우라는 노숙자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살아난 카스가는 '어째서 어르신이 나를 쏘면서-부탁했는가-무엇을 부탁했는가'를 찾아서 이진삼방이 굳건히 지배하는 요코하마를 파고들며 어째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게 메인 스토리이다.

 

 

메인 스토리에서 주로 갈등하는 집단인 블리치 재팬, 일본의 회색지대(불법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낙인이 존재하는 공간들)를 표백하자며 유흥가를 없애야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이다

 

 

아오키 료는 블리치 재팬이라는 시민단체를 기반 삼아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는데, 요코하마 지부의 대표인 쿠메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다듬어지고 조형된 외모도 아니고, 외골수 기질을 가져 생각이 깊지 못한 멍청이로, 여러 면에서 카스가의 상대는 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이런 인물은 어디까지나 희화화에 불과하다. (어쩌면 우리의 얼굴과 가장 가까울) 인물은 이 게임 내 시민이나 사실 게임 바깥 세상 우리들의 총의(總意) 역시 블리치 재팬과 가까울 것이다.

 

회색지대를 말할 때, 포커스를 어디로 둘 것인가? 그런 공간은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가까운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러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카스가는 유흥업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블리치 재팬을 편들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를 외칠 수 밖에 없다. 그 행위는 필연적으로 블리치 재팬을 조직한 아오키 료(아라카와 마사토)와 대립할 수 밖에 없다. 

 

 

용과 같이 7의 부제는 '빛과 어둠의 행방'이다,

 

아까 위에서 카스가 이치반을 '태양 같은 야쿠자'라고 표현했는데, 아오키 료는 그야말로 '야쿠자 같은 정치인'이다. 카스가는 버튼만 안 눌리면 폭력성이 터지는 일이 딱히 없는데, 아오키 료는 올바른-신념을 가진 정치인을 연기하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은 수단에 불과하고, 목적을 달성한 인간은 죽이는 등 꽤 잔혹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룬다.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우리의 적은 이진삼방으로 대표되는 성룡회, 헝빙류만, 거미줄도 아니고 뭐 야쿠자 연합도 아니라  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때부터 부제의 의미를 알게 된다.

 

아라카와 마사토는 굉장히 결핍이 많은 인간으로, 그 결핍을 힘으로 채우려고 한다.

 

(새로운 신원을 얻은 것은)

"수술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아라카와 마스미의 아들로 태어난 것,

병 때문에 남들처럼 청춘 시절을 누리지 못했던 것.....

그런 인생 자체를 다시 쓰기 위해서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었어."

 

사실 위에 올린 피폐남(아라카와 마사토) 시절에 그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그 여자에게 돈으로 구애했는데, 그 여자는 도리어 '그래봤자 야쿠자'라는 식으로 뒷담을 깠다. 그리고 그 여자는 고위 경찰 공무원과 함께 하는데, 이 사건이 아라카와 마사토가 '빛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를 바랐고, 동시에 '세상에서 보란듯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혹은 정당한 폭력)'을 얻으려고 하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그는 정치인이 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아라카와 마스미의 아들임을 포기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영역이었던 야쿠자 토벌 계획을 입안하고 블리치 재팬을 만드는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아오키 료'라는 인물이 되어간다. 그런데 그가 한 가지 못 버린 게 있는데, '야쿠자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참.. 아들은 아들이다 싶을 정도로, 야쿠자의 아들로서 살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지만 야쿠자의 방식으로 결국 그 부정도 온전치 못하게 되는 인물이다. 

 

 

도련님은 느와르 찍는데 이치반은 힙합을 한다

 

"전과자... 즉 법을 어긴 자는 이런 자리에 서면 안 된다?

하지만 어떤 전과가 있어도 입후보할 수 있다고 법률에 나와있어."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긴 하지만) 카스가 이치반이 똑같이 정치인이 되기를 바랄 때, 그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에 대한 전과를 인정하고 후보로 나선다. 자신의 핏줄부터 부정했던 아오키 료와는 완전히 반대로, 그는 자신의 출신도, 회색지대에서 살아온 삶도 모두 인정한다. 카스가 이치반이 아라카와 마사토와 같은 것을 추구할지라도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과 길은 완전히 다를 거라, 결국 같은 것일지라도 다른 의미로 손에 넣게 된다고 여기는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장면에서 이 시리즈의 부제가 '빛과 어둠의 행방'인 까닭도 이런 면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게임은 굉장히 이야기가 풍부하다. 지금까지 소개한 메인스토리에는 이진삼방과 갈등하는 내용도, 그래서 왜 어르신은 이치반을 쏘았는지, 이진삼방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그의 동료들은 어떤 인물들인지는 생략했는데도 이렇게 길잖아. 여기에 서브퀘스트, 동료 인연 스토리, 식사 대화, 요코하마 히어로 등 다 합치면..너무 방대해져서 내가 인상 깊었던 부분만 집중적으로 올렸는데도 이렇게 길어졌으니....

 

그래도 개성있는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만큼 본인이 좋아하는 인물 세명만 소개하겠다

 

 

난바, 아다치 씨, 쵸우를 좋아한다.

 

난바는 사랑에 눈이 돌아서 간호사 면허를 포기한 로맨틱광인인데, 이진삼방의 비밀을 추적하다가 사라진 동생을 되찾기 위해 요코하마에서 노숙자로 잡입중인.. 형아였는데, 중반부에 보인 행동때문에 욕을 디지게 먹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든다. 일단 동생을 찾기 위해 이 살벌한 이진삼방 안에서 효과적으로 잡입해서.. (카스가에게도) 엿먹이고 그런 점때문이 아니라.. 그.. 전략적인 선택으로 노숙자를 택했는데 몸도 마음도 이전의 난바는 없고 노숙자가 되어버린 그런 면이...

 

아다치 씨는 형사의 직감으로 어떤 사건을 파다가 파면당해서 연금 날린 전직 경찰 아저씨인데, 호탕하게 개저씨 소리하는 게 마음에 든다. 같은 동료인 무코다 사에코와 개저씨 소리 핑퐁하는 파티 대화가 진짜 환장하게 호흡이 잘 맞는다... 용과 같이 8편에서는 글로벌화의 펀치를 퍽퍽 맞아 갑자기 입바른 소리하는 아저씨가 되었지만, 7편에서 보여주는 개저의 보법이 진짜 최고라고 생각.

 

쵸우는 스타일이 좋다. 헝빙류만 보스인데 사실 요리하는 게 제일 행복한 소시민적 지향이 있다는 것도. 그러니까 보스로 살지 않았으면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 인간인데 하필 보스의 집안에서 태어나 마피아 보스 노릇을 하면서 싸이코처럼 행동하며 살았다는 그 갭이 좋다. 8편에서도 동료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 ! ! ! ! 

 

그럼, 저는 용과 같이 8 외전하러 갑니데이

 

 

한줄 요약

'용과 같이'  시리즈 전혀 몰라도 괜찮은 게임이지만 플레이 후 인생 저당 잡히는 것은 책임 안짐.